[샘플]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사각지대, 빌라 관리비라는 이름의 분쟁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이 아파트의 나라가 되어가는 과정을 문화비평의 시선으로 추적한 책이다. 강남 개발과 분양 시스템, 평수와 브랜드의 위계, 거실과 베란다의 배치 ㅡ 그것들이 한국 중산층의 일상과 욕망과 투자 감각을 재구성했고, 결국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일종의 운영체제가 되었다는 것이 책의 큰 줄기다.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이 아파트의 나라가 되어가는 과정을 문화비평의 시선으로 추적한 책이다. 강남 개발과 분양 시스템, 평수와 브랜드의 위계, 거실과 베란다의 배치 ㅡ 그것들이 한국 중산층의 일상과 욕망과 투자 감각을 재구성했고, 결국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일종의 운영체제가 되었다는 것이 책의 큰 줄기다. 후속작 〈아파트 게임〉에 이르면 이 운영체제의 작동 방식 ㅡ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 분양가, 시세 ㅡ 이 한국인의 시간과 자원을 어떻게 빨아들이는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책이 직접 다루지 않는 영역이 있다. 아파트가 운영체제가 되는 동안 그 운영체제의 바깥에 남겨진 다른 주거 형태들 ㅡ 빌라,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의 풍경이다. 한국 가구의 적지 않은 비율이 이 형태로 거주한다. 그러나 이 거주자들이 매달 받아드는 관리비 고지서의 풍경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려낸 아파트 거주자의 그것과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내가 받는 빌라 관리비 분쟁 상담의 양상은 대개 비슷하다. 매달 가구당 7만 원에서 15만 원 안팎의 관리비가 청구되는데, 그 사용처가 모호하다. 청소비, 공동전기료, 승강기 유지비, '관리수수료', '예비비' ㅡ 항목은 있지만 영수증과 장부를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위탁관리회사가 바뀌었지만 누가 결정한 것인지 입주민들은 알지 못한다. 회계장부를 보여달라고 요청하면 "그동안 그렇게 해온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빌라가 사는 두 법률의 사이
한국의 빌라가 처한 법적 위치를 이해하려면, 두 개의 법률이 분업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흔히 입에 오르는 「공동주택관리법」은 사실 모든 공동주택에 그대로 적용되는 법이 아니다. 이 법의 강행규정 다수는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에 한해 작동한다. 300세대 이상이거나, 150세대 이상이면서 승강기 또는 중앙집중식 난방방식 등을 갖춘 단지가 그 범위다(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조). 한국의 거의 모든 빌라는 이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즉, 공동주택관리법이 정한 입주자대표회의의 절차, 관리비 회계의 외부감사, 회계자료의 정기 공개 같은 까다로운 의무는 빌라에 적용되지 않는다.
빌라에 적용되는 주된 법은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이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구분소유관계가 성립하면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관리단'이 당연히 성립하고(제23조), 구분소유자가 10인 이상일 때에는 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제24조). 관리인은 매년 1회 이상 관리단 집회에서 그 사무에 관한 보고를 해야 하고, 회계 관련 장부와 증빙서류를 작성하여 보관할 의무를 진다(제26조). 그리고 이해관계인은 관리인에게 그 보고자료의 열람을 청구하거나 자기 비용으로 등본의 발급을 청구할 수 있다(제26조 제3항).
여기까지 읽고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정확하다. 법조항은 있다. 문제는 그 조항이 빌라 안에서 작동하는지 여부다.
분쟁의 구조 ㅡ 관리단의 부재, 임차인의 위치
다수의 빌라에서 관리단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거나, 아예 구성된 적이 없다. 빌라 입주민이 자기가 사는 건물의 '관리단 집회'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본 경험이 있다면 드문 사례에 속한다. 입주민은 관리단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위탁관리회사와 직접 마주하고, 그 위탁관리회사는 누구의 위임을 받아 어떤 계약 조건으로 관리하는지를 입주민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관리단의 결의나 관리인의 선임 절차가 적법하게 거쳐졌는지를 확인하려면 결국 관리단 집회를 소집해야 하는데, 집회 소집권자는 관리인 또는 일정 비율 이상의 구분소유자로 한정된다. 빌라 구분소유자의 상당수가 그 빌라에 거주하지 않는 임대인인 경우(흔하다), 입주민이 동의를 모으는 일은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에 가깝다.
더 곤란한 것은 임차인의 위치다. 빌라 거주자의 다수는 임차인이지만, 집합건물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다수는 구분소유자(즉, 임대인)에게 귀속된다. 매달 관리비를 부담하는 자는 임차인이지만, 의결권은 임차인에게 없다. 임차인이 회계자료의 열람·등사를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임차인 역시 '이해관계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이지만(법무부 집합건물법 표준규약 해설 등 참조), 현장에서 관리인이 이를 순순히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임차인은 청구서를 받고 송금하는 행위를 매달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풍경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아파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파트의 운영체제는 적어도 입주자대표회의라는 견제 장치, 관리비의 K-apt 공시 의무, 외부 회계감사 같은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빌라는 그 인프라의 거의 전부를 결여한 채, 같은 도시의 같은 거리에 서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법전 안에는 빌라 거주자를 위한 도구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작동시키는 일이 거주자 한 사람의 일상에 무겁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첫째, 관리비 회계자료의 열람·등사를 서면으로 청구한다(집합건물법 제26조 제3항). 회신이 없거나 거부되면, 그 자체로 다음 단계의 분쟁조정 또는 가처분 신청의 근거가 된다. 둘째, 동조하는 다른 입주민·구분소유자와 함께 관리단 집회 소집을 추진한다. 집회의 결의로 관리인의 해임, 관리회사의 변경, 외부 회계감사의 시행 등을 의결할 수 있다. 셋째, 시·도에 설치된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다. 2020년 집합건물법 개정으로 도입된 이 절차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위탁관리계약의 적법성, 관리비 산정의 적정성 같은 사안을 다룰 수 있다. 넷째, 그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또는 부당이득반환 청구의 본안소송으로 진행한다.
이 절차들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과, 매일 출퇴근하는 한 사람이 그 절차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변호사로서 내가 마주하는 빌라 관리비 의뢰인의 다수는, 의문을 가진 지 1~2년 만에 사무실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다. 그동안 그들은 영수증을 받지 못한 관리비를 매달 송금했다.
한국이 아파트의 나라가 되는 동안
박해천이 분석한 한국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정확하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는 정확하기 때문에 그늘도 정확하다. 한국이 아파트라는 운영체제를 정교하게 다듬는 동안, 그 운영체제의 바깥에 있는 빌라·연립·다세대의 거주자들은 자신의 관리비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 매번 처음부터 길을 만들어야 했다. 법은 그들을 위한 도구를 마련해두었지만, 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안목과 정보의 인프라는 그들 각자의 일상에 떠넘겨졌다.
이것이 한국 도시 거주의 또 다른 얼굴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누구에게나 약속되었으나, 그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는 범위는 의무관리대상의 경계 안쪽이다. 그 경계 바깥에서 매달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들고 작은 의문을 삼키는 한 사람의 일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비추지 않은 그늘에서 지금도 반복된다. 빌라 관리비 분쟁이 사소해 보인다면, 그 사소함이야말로 이 그늘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우리 풍경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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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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