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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노동

[샘플] 퇴근 후 카톡, 그것은 노동일까

밤 열한 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휴대전화에 알림이 뜬다. "내일 회의 자료에 이 부분만 반영해서 보내주세요." 부장의 카톡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머릿속은 다시 사무실로 끌려간다.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몸은 노트북 앞으로 향한다. 다음 날 아침까지의 한 시간 반은 누구의 시간이었을까.

2026. 05. 05. · 4분 읽기 · 양지훈

퇴근 후 카톡 이미지

밤 열한 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휴대전화에 알림이 뜬다. "내일 회의 자료에 이 부분만 반영해서 보내주세요." 부장의 카톡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머릿속은 다시 사무실로 끌려간다.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몸은 노트북 앞으로 향한다. 다음 날 아침까지의 한 시간 반은 누구의 시간이었을까.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시간"[1]으로 정의한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모든 순간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정의는 명료해 보이지만, 카톡 메신저가 일과 일상의 경계를 지워버린 시대에는 묘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알림 한 번에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로 즉시 소환된다. 출퇴근 시간은 디지털 호출 앞에서 무력하다.

법원은 그동안 메신저를 통한 업무지시에 응답한 시간도, 그리고 휴일·심야의 대기상태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온 사례를 쌓아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가 그 시간을 임금으로 받아내기까지의 거리는 멀다.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 그것을 처리한 시간, 그리고 그것이 사용자의 명시적 지시였다는 점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입증의 부담은 거의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다. 권리가 있다는 말과,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최근 몇 년 동안 국회에는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명문화하려는 법안들이 반복적으로 발의돼왔다. 프랑스가 2017년 시행한 droit à la déconnexion이 이름의 출처다. 다만 한국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대부분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에 한정하거나 처벌 조항 없이 선언적 규정에 그쳐, 통과되더라도 실효성을 어디까지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라붙는다. 입법은 늦고, 그동안 노동자의 밤은 여전히 카톡 알림에 잠긴다.

그렇다면 지금, 퇴근 후 메시지를 받은 노동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응답한 사실과 시간을 기록한다. 화면 캡처 한 장과 메모 한 줄이 훗날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둘째,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업무지시라면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를 펼쳐 시간외근로에 관한 규정과 동의 절차를 확인한다. 동의 없이 이뤄진 시간외근로는 그 자체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 셋째, 가능하다면 개인의 호소가 아니라 집단의 문제로 제기한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노동조합으로, 없다면 적어도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의 공유로. 사용자에게 한 사람의 메일은 잘 도달하지 않지만, 같은 내용의 다섯 통은 다르게 읽힌다.

물론 이 모든 조언은 어딘가 공허하다. 부장의 카톡을 무시할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법은 권리를 보장하지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노동법은 늘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법전 안에서 단정하게 정리된 권리의 목록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그 권리를 꺼내드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의 풍경이다. 사무실에서 내가 매일 마주하는 것은 후자의 얼굴이다.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다가 해고를 걱정하는 사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망설이며 "다음 직장에 소문이 나면 어쩌나" 묻는 사람, 그리고 카톡 알림이 무서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결국 일과 일상의 경계를 누가 그을 것인가의 문제다. 사용자가 그을 수도 있고, 노동자 개인이 그을 수도 있고, 법이 그을 수도 있다. 지금 한국에서 이 선은 대체로 사용자가 그어왔다. 그 선을 노동자 쪽으로 조금 옮기는 작업, 그것이 노동법이 일상에 닿는 한 방식이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의 휴대전화는 울릴 것이다. 그 알림 앞에서, 자신의 시간이 지금 누구의 것인지 한 번쯤 묻는 것.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각주

  1. 1.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https://www.law.go.kr/lsLawLinkInfo.do?chrClsCd=010202&lsJoLnkSeq=900552087
ⓘ 댓글은 법률 상담이 아닙니다. 구체적 사건은 사무소를 통해 자문 받으세요.

댓글 (1)

  • 이현조2026. 05. 05.

    아...우리 부장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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